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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 건 어떤 기분이야” 휴먼프린터로 출력 인간 소모품 다뤄. 미키 17

1,252 0 2025.03.09 07:22
‘아수라처럼’은 1980년대 일본 드라마의 전성기를 이끈 동명 시리즈의 리메이크 작품이다. 나오키상 수상작가이자 1970년대 대표적인 일본 TV 드라마 작가 무코다 쿠니코 각본의 드라마로, 영화와 연극으로도 제작되었다. 일본 드라마의 부활을 겨낭하며‘아수라처럼’을 넷플릭스 시리즈로 글로벌 시청자들에게 선보인 이는‘가족’이라는 주제에 천착해온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다. 영화‘아무도 모른다’‘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바닷마을 다이어리’‘어느 가족’‘브로커’‘괴물’ 등 세계적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작품에 열광한다면 만족할 만할 넷플릭스 드라마다.

영화 ‘미키 17’은 그냥 재미나게 보면 된다. 줄거리는 전형적인 공상과학소설이지만 영화는 SF 장르에 블랙 코미디, 로맨스를 입힌 만화 같다. 봉준호식 유머 코드는 여전하고 스쳐가는 대사도 다시생각하게 만든다. 봉준호 세계의 확장이니 신랄한 사회 비판, 정치 풍자 등의 거창한 요소들을 애써 찾으려 하지 말고 상영시간 137분 동안 유쾌하게 즐기면 된다.

2054년 미키 반스는 얼음행성 개척 임무에 소모되는 ‘익스펜더블’에 지원한다. 친구만 믿고 마카롱 가게를 차렸다가 망했는데도 지원서에 적힌 깨알 같은 글자들은 읽어보지도 않는다. 익스펜더블은 임무 수행 중 죽을 때마다 폐기처분 됐다가 휴먼 프린터를 통해 다시 출력되는 인간 소모품이다. ‘휴먼 프린팅’이라는 컨셉에 매료되었다는 봉 감독은 애드워드 애쉬턴의 원작소설보다 미키를 10번 더 죽인다. 많이 죽일수록 신나서 더 많이 죽이려고 했던 게 아니라 극한 직업이지만 직업이니까 좀더 열심히 일한 느낌, 루틴으로 반복된 느낌이 나려면 아무래도 숫자가 좀 더 많아야 되지 않을까 싶었다는 게 표면적 이유다. 바이오 무기나 백신을 테스트하는데 사용되는, 의미 있는 죽음이 있지만 미키는 대체로 그냥 죽는다. 유전자 정보를 철저하게 분석해 입력시켜 놓고, 기억도 저장해 놓은 상태에서 다시 출력될 때도 주목 받기는 커녕 바닥에 고꾸라지기 일쑤다.

봉 감독이 의도한 바로 ‘미키18’은 출력될 때 오류가 난 휴먼 프린트물이다. 아무리 첨단 기술이라고 해도 실제 사용할 때는 꼭 오류가 발생하고 누락 데이터 여부 확인이 필요하다는 설정이다. ‘페이스 리플레이스먼트’ 등 CGI 효과를 활용한 로버트 패틴슨의 ‘멀티플’ 연기는 그 미묘한 차이를 극명하게 대비시켜 ‘미키 17과 18’에 현실감을 불어넣었다. 그렇다면 봉 감독은 왜 굳이 미키17과 18을 선택했을까. 영화 끝부분 ‘어린 시절 성인이 되면’으로 시작하는 미키의 마지막 대사가 이를 설명해준다. 미키19로 바뀌다 중단되며 ‘미키 반스’가 나와 버리는 장면처럼 이 영화는 미키 반스가 자기 이름을 되찾기까지를 그린 성장 영화인 거다.

미키 17이 얼음 계곡에 굴러떨어진 후 처음 만나는 니플하임의 토착 생명체가 ‘크리퍼’이다. 통째로 삼켜져도 할 수 없다며 한숨을 내쉬는 미키를 살려보낸, 배에 털이 나있고 빵 뭉치처럼 생긴 거대한 땅벌레다.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빙하와 안개로 자욱한 죽은 자의 세계를 뜻하는 니플하임에는 애완동물로 손색없는 베이비 크리퍼, 액션스타가 될 법한 주니어 크리퍼, 카리스마 그 자체인 마마 크리퍼가 산다. 원작에서 ‘지네 같이 생겼다’고 묘사된 크리퍼가 봉 감독의 세계에서 크루아상 빵이 되어 은둔형 동물 아르마딜로의 옷을 입었다. 마크 러팔로우가 연기한 케네스 마셜의 아내 일파(토니 콜렛)의 대사로 표현된 “똥물에 빠진 크루아상” 그 자체다.

소스에 집착하는 일파는 원작에 없는 봉 감독의 창작 캐릭터이다. 영화 속 소스는 문명의 리트머스 종이 같은 상징인데 일파는 소스에 대해서는 진심 어린 애정을 지닌다. 정치적인 알레고리보다는 일파라는 사람의 단순한 취향 문제다. 케네스 마셜이 스타병에 걸린 독재자로 그려지면서 중간중간 TV 토크쇼를 진행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영화 엔딩 크레딧이 끝날 무렵 마크 러팔로우가 부르는 찬송가가 다시 한번 흘러나오며 마지막 순간까지 웃음을 안긴다. 새로운 유형의 독재자 마셜 부부를 귀엽고 재미있는 인물로 표현하고 싶었다는데 개봉을 앞둔 시점에서 봉 감독은 현 정치인들을 연상시켜 미래를 보는 크리스탈 볼을 어디 숨겨놓았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다.

플랜B와 워너 브라더스가 제작 배급하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 ‘미키 17’은 지난달 28일 한국에서 선개봉해 순항 중이다. 오늘(7일) 북미를 포함한 전 세계 관객들의 심판대에 오르는 ‘미키 17’에 투입된 제작비만 1억1800만 달러. 워너브라더스 최고 흥행작으로 등극한 영화 ‘바비’(2023)의 제작비 1억 달러와 유사한 수준이고 2024년 흥행작 ‘듄: 파트2’의 제작비 1억9000만 달러보다는 적다. 한국 극장가 점령을 필두로 판타지 로맨스 ‘트와일라잇’의 뱀파이어를 연모했던 여성팬들과 빈부격차와 계급 갈등을 그린 ‘기생충’에 열광했던 영화팬들 모두를 극장으로 끌어들이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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